2022. 10. 31. 17:44ㆍ아티스트 인터뷰/문화예술인 인터뷰
우리는 서로를 더 잘 알 필요가 있다. 같은 집단에 속해 있을 수록 더 그렇다.
가족끼리 왠지 취향을 물어보기 쑥쓰럽듯 우리는 서로 안다고 생각하는 순간 역설적이게도 잘 모르게 된다.
그래서 준비했다. 유령클럽 인터뷰 시리즈. (두둥~ 칫)
그 1편을 지금 바로 공개한다.
"고요하고 짜릿하고 재밌고 지침의 연속!" 박지하 인터뷰
Q. 유령클럽 인터뷰 구독자 여러분들께 자기소개 간단하게 부탁한다.
지하: 안녕하세요. 저는 그냥 박지하고요. 미술 디자인을 하고 있는데, 요즘은 사진과 일러스트레이션에 집중을 하고 있고요.
즐겁게 사는 거 좋아하고 사람을 좋아합니다.
대니: 사진과 일러스트레이션, 둘 중 하나만 고르자면?
지하: 둘 중 하나만 꼽자면, 일러스트레이션!
Q. 일러스트할 때, 본인이 가장 중요시하는 부분은?
지하: (한참 고민하다가) 아, 이거 어렵다. 근데 재밌네요.
이건 일러스트레이션뿐 만이 아닐 수 있는데, 솔직한거? 인생 전반적으로나 작업 전반에 관해서는 솔직한 게 제일 중요한 것 같다.
대니: 솔직하지 않은 작품을 많이 봤나?
지하: 이걸 보고 솔직하지 않은 것 같다라고 생각한 작품들보다는, '어디서 본 것 같다?'는 느낌이 솔직하지 않다고 느끼게 하는 것 같다. 나는 창의성이 솔직함에서 온다고 생각한다. 왜냐하면 모든 사람은 이미 너무나 고유하고 상황이 달라서 이걸 있는 그대로 이야기만 하면 되는데 뭔가 따라하려고 하고 얹으려고 하면서 다양성이 사라지는 게 아닌가.
그래서 모두가 솔직하게 표현할 수 있는 세상을 만들자는 게 나의 큰 목표다.
Q. 창작 활동을 되게 다양하게 하고 있다. 글, 사진, 낙서 3가지로 자신을 표현하고 있고, 인스타그램도 zzziha_, zzziha_notes, zzzalkak 등 여러가지 테마의 계정을 운영 중에 있는데, 각자의 표현방식이 어떻게 다른지 궁금하다. (글, 낙서, 사진 순서로)
(글)
지하: 처음에는 글의 매력을 잘 몰랐다. 오히려 미술을 시작하면서 글에 매력에 빠지게 되었다. 미술은 굉장히 개인적인 언어인데 글처럼 보편적이고 일반적이지 않은 부분이 있다. 글은 좀 더 보편적인 언어이면서 개인의 문체로 개성을 표현하는게 매력적으로 다가왔다.
(사진)
지하: 사진은 정확하게 내가 보는 것을 직관적으로 보여준다. 사진은 사실적이다. 그림 같은 경우는 예를 들어, 오리를 그릴 때 어떤 오리를 어떻게 그릴지에 대한 경우의 수도 많고 그만큼 해석의 여지는 더 많다. 하지만 오리를 사진으로 찍으면 사진 찍은 사람의 시선을 곧바로 느낄 수 있다는 점이 매력이다.
(낙서)
지하: 낙서는 보통 하찮게 여긴다. 그래서 더 매력적이다. 또, 어디든지 있을 수 있다는 매력도 있다. 그리고 뭐든지 낙서와 만화를 통해 표현하면 '웃는 낯에 침 못 뱉는다'는 말처럼 오히려 더 가벼우면서 해학적으로 보인다. 만화의 뿌리가 정치 풍자에서 시작된 것처럼 좀 더 우회적으로 말할 수 있는 효과적인 표현 방식이다.
Q. 현재 홍익대학교 시각디자인과에 재학 중이고, 홍익대학교 학생회나 사진 예술동아리의 일원으로도 오랫동안 활동하신 걸로 알고 있다. 한국의 대학 생활이 예술을 하는데 끼친 영향이나 대학생인 동시에 예술인으로서 살아가는 이야기가 궁금하다.
지하: 한 번도 생각 안 해봤는데 (질문이) 너무 좋다.
나는 오히려 대학생이라는 신분이 주는 편안함이 있는 것 같다. 안정감과 소속감. 학연 지연 그리고 인맥은 한국 사회에서는 절대 무시할 수 없다. 그래서 학생으로서의 신분이 나는 편안하다.
Q. 아이들 미술 가르치는 일도 병행하고 있다. 그 일을 통해 느낀 점 혹은 하게 된 생각이 있나?
지하: 정말 정말 많아서 몇 가지만 얘기해보겠다. 처음에는 애들이 하는 이야기 자체가 너무 재밌었어서 막 받아적었다. 몇 달 지내고 보니, 문제점이라고 해야할까 그런 생각이 든다. 아이들은 칭찬 받고 부모님한테 자랑하고 싶고, 부모님도 아이들이 잘해낸 결과물을 보고 싶어하는 기대감이라고 해야하나 그런게 있다. 학원 원장 쌤도 그런 걸 아시고. 그래서 어쩔 수 없이 도와준다거나 빠른 진행을 위해서 대신 해주는 부분이 있다. 하지만 이 친구들의 미래를 생각하면 지금 하는 방식들이 아이들을 방해할 수 있겠다라는 생각이 든다.
이 학원뿐 아니라 아동 학원 전반적으로 이게 맞나 하는 의구심은 든다. 좀 더 다르게 하면 아이들의 상상력을 더 크게 해줄 수 있을 것이라는 생각을 한다.
Q. 지하에게 가장 큰 영감이 되는 것은 무엇인가?
지하: 책과 일기장인 것 같다. 결국 그냥 사람들의 이야기 집합소다. 책이 저자들의 이야기 집합소인 것처럼 내 일기는 내 주변사람들의 이야기 집합소다. 거기에 내 생각. 그거 몇달치 보고 있으면 '아 이건 이거랑 엮어봐야 겠다'가 나온다.
대니: 본인 일기 읽는 거 즐기시는지.
지하: 완전 즐긴다.
Q. 합정 소재 작업실에서 예술 작업을 대학교 동료들과 작업하며 반숙식을 하고 있다. 그 생활은 어떤지 궁금하다.
지하: 너무 재밌다. 어쨋든 사람들이 모여있으니 생기는 일이 많다. 모든게 다 긍정적이진 않지만, 내가 사는 용인은 시골이고 작업실이 있는 합정은 모든 곳을 10분 안에 갈 수 있다. 학교, 도서관, 서점, 전시 등. 시간을 더 자유롭게 활용하면서 밤새서 작업하고 옆에 친구한테 물어볼 수 있는 것도 큰 장점이다. 별게 아닌데 공유할 수 있는 사람이 있는 것은 크다.
Q. 인도에서의 유학 경험이 인생에 끼친 영향은?
지하: 초2때부터 중1때까지 있었다. 5년간 살면서는 별 생각이 없었는데 돌이켜보면 그 때의 생활때문에 '새로운 곳에 적응하는 능력'이 커졌다. 외국 학교에서는 매달 전학을 오고가는 학생들이 많았다. 그래서 만남과 이별에 대해 쿨해졌다. 어떤 친구들은 6개월동안만 있다 가기도 하니까 그 시간동안 어떻게 재밌게 지낼지에 대해서만 고민하게 되었다.
Q. 유령클럽에 들어오게 된 계기와 현재 자신의 인생에 끼치고 있는 영향
지하: 일단 들어오게 된 건 우연한 인스타그램 DM이었다. 언제나 새로운 도전에 대해서는 환영이기 때문에 '밑져야 본전'이지 하는 마음으로 들어오게 되었다. 첫 오프라인 모임을 주령 (이준학)의 전시회에서 가졌는데, 그 때의 나의 감상은 '내가 너무 학교 사람들과만 어울렸구나.'였다. 다양한 사람들 사이에서 나는 우물 안에 개구리, 온실 속 화초 같았다. 비전공자인 사람도 이렇게 열심히 하는데 내가 너무 안일했구나하고 생각한 적도 있었다.
Q. 유령클럽에서 해보고 싶은 활동?
지하: 이거는 주령 (이준학)과 협의가 되어야 하는 건데. (웃음) 내가 인스타 피드 관리하는 걸 좋아하는데 지금도 물론 좋지만, 딱 디자이너 스튜디오 계정보면 느껴지는 단정한 피드처럼 꾸며보고 싶다. 더 유령 느낌이 나게 바꿀 수 있지 않을까.
Q. 예술을 '이야기 보따리'라고 표현한 바 있다. 본인은 어떤 이야기를 담고 싶은가?
지하: '와 이런 사람도 있네'라는 걸 알려주고 싶다. 이걸 되게 가볍게 담고 싶다. 자랑하듯이가 아니라. '이것도 예술이 될 수 있나?'
하는 생각이 들게. 누구나 할 수 있다라는 생각을 퍼뜨리고 싶다.
Q. 지하는 어디서 쉼과 위로를 얻는가?
지하: 사람들과 이야기. 어떤 사람들은 집에 혼자 있을 때 쉼과 위로를 얻는다고 한다. 반면 나는 집에 혼자 있으면 아무것도 안 느껴진다. 어쩔 땐 심지어 우울하다. 혼자만의 생각에 빠지는 건 항상 건강하지는 않다. 다양한 사람들과 만나면서 다양한 이야기를 나누면 내가 어떤 사람인지가 윤곽이 잡힌다. 그런 데서 안정감을 느낀다.
대니: 혹시 지하가 다른 사람에게서 여러 이야기 보따리를 들으면서 쉼과 위로를 얻는 것처럼 본인도 그런 이야기를 하면서 다른 사람들에게 쉼과 위로가 되고 싶은 건 아닐까?
지하: 오. 이거 심리 상담인가요? 너무 재밌는데요. (모두 웃음)
Q. 요즘 가장 주목하고 있는 예술인과 그 이유
지하: 예술인. (오랜 시간 고민하다가). 없다. 주변 친구들 중에서는 많은데 지금 프로로 활동하는 사람 중에는 없다.
대니: 대니라고 해주세요.
지하: 오 대니요. 사람의 가치관이 건강하고 오픈마인디드한게... (주저리주저리 칭찬)
대니: 이정도면 됐습니다. 많이 먹었네요.
Q. 예술 내적으로나 외적으로나 가지고 있는 고민이 있을까.
지하: 없다.
Q. 10년 후 나는 ____________를 하고 있을 것 같다.
지하: (웃음) 제일 먼저 떠오른게 뭔지 아는가. '헛소리'다.
헛소리라는 게 되게 건강한 것이라고 생각한다. 헛소리를 편하게 할 수 있는 친구들이 많지는 않다.
가장 솔직하고 건강하고 재밌고 창의적인 이야기들인 것 같다. 전반적으로 남들은 무시하는 것 같지만 모든 것에 다 각자의 의미가 있다.
한 시간이라는 짧으면 짧고 길면 긴 시간동안 그녀의 향기가 잔뜩 묻어난 대답들을 한 움큼 모았다.
인터뷰라는 것은 진실의 의자 같은 것이다.
언제나 이야기 상대가 필요해 말하고 싶어 돌아다니던 할머니가 앉아서 마구 떠드는 것마냥
우리는 합정동에서 그렇게 떠들어댔다.
아티스트 박지하 인스타그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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