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 6. 27. 01:06ㆍ당신이 모르는 숨겨진 음악들/국내 힙합 리뷰

너와 비릿한 음악 그 사이에 떠밀어 날.
(4번 트랙 CLOVER 中)
멀멀미(mermerme)의 음악은 섬세하고 실험적이다.
가사적인 표현이 거침없으면서도 그 내용은 정교한 짜임새를 가지고 있다. 새로운 표현 방법과 구성으로 날 것의 느낌이 들면서도 그 성격이 투박하지 않고 단어 하나하나 신경써서 쓴 것이 느껴질 만큼 탁월하다.
멀멀미의 첫 EP앨범 [CLOVER]는 사운드와 앨범아트 그리고 뮤직비디오까지 빈티지함이 느껴진다.
그래서 더욱 듣는이로 하여금 현실에서 몇 발자국 떨어진 제3의 공간에서 동화적인 분위기에 푹 빠질 수 있게 한다.
1. droplet
전부 추억인듯 꾸며내 괜히 너무 작아졌던 어제 나 혼자 갇혔어 이 거울 안
(1번트랙 droplet 中)
'drop it' 으로 시작하며 흘러내리는 하강의 이미지가 강한 트랙이다. 인트로에 띄어쓰기가 없는 단어들의 나열은 마치 혼란 속으로 빨려들어가는 듯한 시상을 선사한다. 트랙의 전체적인 분위기는 회색의 빗방울들이 창문 밖에 흘러내리는 화장실안에 갇힌듯한 분위기를 자아낸다. 또한, 곡 전반의 라임 배치도 눈여겨볼만한 포인트다.
2. smile (ft. DNYDK)
달이 널 베어문다 해도 전혀 개의치 않지
너를 채운밤도 결국 헤어날 수 없는 자국에 불과하고 넌 매일 밝아
(2번 트랙 smile 中)
낭만적 이미지의 나열과 색채가 살아 있는 단어들의 행렬로 통통 튀는 트랙이다.
1번 트랙 'droplet'에 이어 전반적인 텍스쳐는 유지하면서 분위기가 색다르게 전환되는 느낌을 받을 수 있었다.
상징적인 키워드들로 이루어진 가사를 보며 밝은 원색이 교차하는 추상화를 보는 듯했다.이전 트랙이 하강의 이미지가 강했다면, 2번 트랙은 대니딕 (DNYDK)의 벌스로 대표되는 분위기가 가볍게 환기되는 듯한 상승의 이미지를 느낄 수 있었다. 또한, 멀멀미의 벌스에서 초현실주의적인 풍경이 눈앞에 그려지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다만, 정리되지 않은 듯한 미숙한 영어 문장들은 그런 감동에 노이즈를 더할 뿐이었던 게 아쉬웠다.
3. fffffstein (ft. DNYDK)
your love is outrageous you want my all? take it
(3번 트랙 fffffstein 中)
빈티지함이 가장 많이 드러나는 트랙이다. 가사 전문이 영어로 쓰여졌는데, 그 제목과 내용이 상당히 난해하다.
Frankenstein를 연상케 하는 제목이지만 어지럽게 스펠링이 뒤섞여있다.
1815년 영국에서 출간된 메리 셸리의 소설 <프랑켄슈타인>를 오마주한 트랙으로, 원작의 분위기나 설정을 채택하여 멀멀미만의 사랑 노래로 재해석한 것으로 보인다.
높은 가성의 대니딕의 벌스도 인상적인데, 높은 음과 공격적인 사랑에 아파하는 내용으로 미루어보아 소설 <프랑켄슈타인>에서 주인공 빅터 프랑켄슈타인이 만든 괴생명체에게 목숨을 잃는 '엘리자베스 라벤자'의 역할을 노래한 것으로 해석할 수 있을 것 같다. [fffffstein]은 앨범의 빈티지한 텍스쳐와 동화적인 분위기를 한껏 더해주는 트랙이었다.
4. CLOVER
If we get stuck cause of cold I'll be your antifreeze
(4번 트랙 CLOVER 中)
[CLOVER]의 타이틀 트랙으로, 신나는 4비트 리듬의 락 사운드를 기반으로 한 노래다.
래핑은 배제되고 보컬적인 부분이 부각되는 노래로서, 밴드 사운드라고 봐도 무방하다.
사랑하던 여인에게 버려진 화자의 외로움을 상반되는 분위기의 업비트적인 락 노래로 풀었다. 내용과 곡의 분위기가 상반되듯이, 많은 역설을 포함하고 있는 트랙으로 보인다. 그런 장치의 일환으로서 상반되는 이미지를 앞뒤로 나열한 부분을 많이 찾을 수 있었다. dark와 light의 어둠과 밝은 이미지의 교차, sunshine과 rain으로 표현된 상반된 날씨 등에서 느낄 수 있다.
하지만 아쉬운 점은 가사가 상당히 어지럽고 그 연결이 어색하다는 점이다. 앞뒤 내용이 콜라주 기법처럼 전혀 관련없는 잡지 여러장을 섞어 놓은 듯한 느낌을 주었다. 허나 이조차도 빈티지한 앨범의 색깔에 기여한다는 점에서 인상깊기도 하다.
5. 쉬어가 (she, a girl)
잠은 잃었고 난 미로같은 거릴 돌아 닿을 리 없다던 그 말을 입에 머금고 나와
(5번 트랙 쉬어가 中)
마지막 곡으로서 이 앨범의 대미를 장식하는 아웃트로 성격의 트랙이다. 길게 반복되는 플로우가 아름다운 가삿말로 인해 하나도 진부하게 느껴지지 않는다. 밝은 달 아래 어두운 풍경 속에 사랑했던 그녀가 눈 앞에 어른거리는 듯한 분위기를 느낄 수 있다. 이례적인 곡 구성이 산문적으로 길면서도 지루하지 않게 짜임새 있다. 프로듀싱으로 참여한 poltergeisy가 적재적소에 넣어둔 변주와 멀멀미의 백킹 코러스로 인해 오히려 모든 부분이 새롭게 느껴지는 듯하다.
추상적인 마음을 세심하고 솔직한 가삿말로 표현한 '비릿한 음악'이라고 평가할 수 있을 것 같다.
5번 트랙에 와서야 앨범의 전체적인 플롯에 대한 이해가 생기는 듯하다.
절망적인 현실 상황으로 인해 좌절한 남자가 달콤한 꿈을 꾸다가 이내 악몽으로 바뀌고 그에 대한 허전함을 잠에서 깨고 나서 노래하는듯한 이야기로 풀어 해석할 수 있을 것 같다.
전체적인 프로듀싱을 멀멀미 스스로 맡은 그의 첫 EP앨범에 큰 박수를 보내고 싶다. 미숙한 부분마저도 전체적인 분위기를 형성하는데 큰 기여를 했다고 말할 수 있다. 앞으로 그가 그려낼 이야기 모음들이 기대되는 바다.또한, 아트워크와 뮤직비디오와 음악의 삼박자가 고루 밸런스가 맞다는 점에서 균형이 잘 잡힌 앨범이라고 감히 평가하고 싶다.
멀멀미가 앨범 소개를 통해 공개한 메세지로 리뷰를 마무리하고 싶다.
-큐레이터 블레이크✍🏻-
힘든 날들 사이에서도 빛날 수 있는 것들이 숨어있어요
매일 행복하려 노력하는 것 같아요
보잘 것 없는 정도이더라도 나 또한 힘이 되고 싶어요
안되면 어쩔 수 없구요
너와 비릿한 음악 그 사이에 떠밀어 날
-쉬어가
이 가사가 저는 제일 좋아요
삶과 죽음이 이어져있다고 저는 생각하거든요 슬픔과 절망도 희열이나 기쁨과 이어지지 않을까요? 그래서 끄적인 것들입니다 행복하세요 사랑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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