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 6. 11. 15:48ㆍ당신이 모르는 숨겨진 음악들/국내 힙합 리뷰

너의 눈칠 보는게 내 삶의 낙이야 다 느껴져 화난 말툴 끊을 수가 없어 난 숙여 더
-1. 저희 집에 강아지가 있어서요 이만 집에 가봐야 해요 中-
미니멀한 사운드에 녹아든 멀멀미의 멍멍이 감성, mermerme - [pett]
2021년 3월 발매한 솔로 EP [CLOVER]와 같은 해 6월 발표한 러버사이즈 (LVRSZ)의 컴필레이션 앨범 [LVRSZ.COM] 이후 다시 자신의 솔로 앨범으로 멀멀미가 돌아왔다. EP 앨범 [pett]은 제목에서도 알 수 있듯이 화자가 자신을 펫 (반려동물; pet)에 빗대어 써내려가는 이야기다. 멀멀미의 이러한 펫 감성이 작품에서 풀어진 것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미국 플로리다의 프로듀서 Brando Jordan과 발매한 싱글 <hedgehog (고슴도치)>에서 쓴 '나의 약함을 다시 귀여움으로 포장해 그래야만 목줄을 놓지 않을까봐'라는 라인을 이번 앨범 4번 트랙 <네 품은 마약베개>에서 '다 귀여움인 척인 나의 약함 원인 몰라 더 혼란 스러우니 난 다시 너를 찾아'라는 라인으로 셀프 인용한 것에서도 볼 수 있듯이, 뮤지션 멀멀미는 작품 속에서 본인을 강아지로 표현하는 은유를 자주 사용한다. 이러한 펫 감성이 발전되어 극대화된 것이 이번 앨범 [pett]이다.
트랙리스트.
1. 저희 집에 강아지가 있어서요 이만 집에 가봐야 해요
2. 저 멀리로
3. 너가잠이든모습을구경하다잠들고파
4. 네 품은 마약베개
5. 밤엔
1.저희 집에 강아지가 있어서요 이만 집에 가봐야 해요
너의 조그마한 방에 누워, 차갑게 식어버린 니 어깰 안을때
똑같은 노랠 흥얼거려 니 목소린 마치 구원을 덮은듯 해
이 앨범은 트랙 수부터 이전 솔로 앨범 [CLOVER]의 후속작임을 암시한다. 마치 [CLOVER]의 첫 트랙 <droplet>을 들을 때의 강렬한 흡입력을 선사하는 첫 트랙이다. 이 트랙은 [pett]의 전체적인 컨셉을 아우르는 이름표 같은 트랙이다. 특이할만큼 긴 제목 <저희 집에 강아지가 있어서요 이만 집에 가봐야해요>을 보고 재생을 눌러, 첫 라인 '너의 조그마한 방에 누워 차갑게 식어버린 니 어깰 안을때'를 듣는 순간 오묘함을 넘어 이질감이 느껴진다.
"앨범제목(pett) - 트랙 제목(저희 집에 강아지가 있어서요) - 가사"에서 이어지는 의미의 연장은 이 앨범이 사랑 이야기지만 그냥 평범하고 동등한 주체의 사랑 이야기가 아님을 암시한다. 강아지는 우리의 친구지만, 주인과의 관계는 명확하다. 주인은 강아지가 될 수 없고, 강아지는 주인이 될 수 없다. 그 강력한 주종관계를 묘사하려는 듯한 묘한 시작이 느껴진다. 멀멀미가 제목에서 말한 '저희 집에 있는 강아지'는 화자 본인이 아닐까 조심스레 추측해본다.
2.저 멀리로
여긴 위험 빨리 떠나자 저멀리
원래 많은거 알잖아 겁이 근데 난 너 말곤 아는게 없지
강아지가 주인에게 목줄을 물고 와서 산책가자고 하는 듯한 2번 트랙이다. 떠나고 싶고 어디든 도망가고 싶은 현실이지만 너가 없이는 현관 조차 나갈 수 없다는 애교 아닌 애교를 부린다. 후렴의 중독성이 강하다. 첫번째 후렴에서 두번째, 세번째로 가면서 점차 얹어지는 코러스와 화음은 그 중독성에 다이나믹을 더한다. 미니멀한 신디사이저와 먹먹한 드럼 루프의 소리가 어우러져 베드룸 팝 (bedroom pop)의 감성을 짙게 느낄 수 있는 귀여운 트랙이다.
3.너가잠이든모습을구경하다잠들고파
네 머릴 매일 내 위에 얹어
내 팔이 저릿해져도
아픈 티를 낼 수는 없어 시간이 빨라 두려워
투박하지만 아름다운 가사들로 가득한 3번 트랙이다. 무엇보다 멀멀미의 강점인 한글 라임과 운율이 가장 많이 돋보인 트랙이다. '나쁜 생각이 널 덮치면 내가 먹어버릴게' 라든지, '너무 쉽게 토라져도 난 매일 똑같은 짓이 너무 좋아' 같은 가사들은 이쁜 엽서처럼 모아서 집에 가져가고 싶을 정도다.
4.네 품은 마약베개
너의 남자인듯 날 이뻐해줘 눈에 차진 않아도
만약 하게 된다면 다시 내가 널 안게된다면
복면 가왕의 '알쏭달쏭 강아지' 복면을 벗어주세요-정체 공개-'상상치도 못한 정체!' 같은 트랙이다. 이쁨만 받는 것에 익숙했던 강아지는 강아지의 선을 넘고 목줄을 벗고 싶어한다. 동등한 위치에서 나누는 사랑이 아니었을 때 느끼는 결핍감과 그런 상황에도 불구하고 나한테는 너밖에 없을것이라고 말하는 지독한 헌신이 느껴지는 트랙이다. 너의 품은 마약 베개고, 너는 마약이다. 너가 없는 결핍감에 화자는 다른 약에 취해도 보면서 방황한다.
5.밤엔
빠른 말에 널 감춰도 나는 같은 것만 보이고
다른 향이 널 적셔도 밤엔 날 더 안아줘요
마지막 트랙이 타이틀 곡인 앨범은 세상에 몇이나 될까. <CLOVER>의 타이틀 곡과 같은 기타의 청량감이 느껴진다. 동시에 깊은 베이스와 넓은 공간감을 주는 신디사이저가 웅장함을 선사한다. 이 곡은 [pett]의 다른 4곡들과는 사뭇 다른 느낌과 분위기, 가삿말을 담고 있다. 강아지라는 가면을 버리고 본인의 진짜 모습을 보여주는 듯한 그런 웅장함이 보이는 트랙이다.
가삿말이 많이 어지러운 가운데 자주 등장하는 표현들이 있다. '가면'과 '기억'이다. 정확한 이유는 알 수 없겠지만 우리는 모두 가면을 쓰고 있다. 아무리 가까운 관계여도 우리는 그 가면을 바꿔가면서 상대를 마주한다. 그 가면을 읽다가 우리는 한 순간 어긋나고 유기견처럼 버려지기도 한다. 한편 기억은 지워지기 쉽지 않다. 기억이라는 말을 할 때 우리는 기억 속 순간과는 한 블럭 더 멀어지게 된다. 어떤 이유에서든 화자는 자신이 원하는 상대와 멀어졌고 그 기억이 몰아치는 괴로움 속에 밤을 맞이한다. 밤엔 상대가 가면을 썼는지 벗었는지 가면이 있기는 한건지 애초에 없었던 것이 모르기에, 그런 고뇌에서 벗어나 진실된 모습으로 안아달라고 절규하는 것 같았다.

멀멀미가 독특한 컨셉으로 돌아왔다. 곳곳에서 이전 작들의 흔적을 볼 수 있어 반가웠고 그동안 뿌려 놓은 펫 감성의 가사들이 모여있어 가사 듣는 재미가 쏠쏠했다. 무엇보다 베드룸 팝과 힙합 그리고 인디스러운 투박한 표현으로 가득한 앨범이라 꽃갈피 같은 향수를 느끼게 해주었다. 신선한 사랑의 소재로 많은 화두를 던져주는 사랑 노래들이었다.
우리는 누구의 어떤 펫일까?
[큐레이터 로이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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